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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장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오늘 본문 1-3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죄와 허물 가운데서 행하고,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다고 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부연 설명이 되어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불순종의 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자기 멋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 근본이 죄로 인해 죽었던 자들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과 관계가 전혀 없었던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통해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 순간부터,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산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힘이나 지혜나 어떤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으로 인해 속량을 받은 것입니다. 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 (은혜) 입니다.

그런데 오늘 에베소서 2장에서 주의 깊게 보실 구절은 6절입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가 구원을 받고 죄와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2장에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과거 시제였던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앉게 된 것도 과거 시제인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하늘 보좌에 우리가 앉았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관계의 변화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위가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의 후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부족한 모습이 여전히 많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또한 하나님 나라의 후사입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로 살아갈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또 하나님 나라에서 왕노릇하며 산다는 것은 미래형으로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지위는 우리에게 서로 화평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이방인도 유대인도 없습니다. 한 형제 자매로 화평을 이루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한 새 사람”의 의미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모두 성령님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 세워져 가는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한 가족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사랑하며 화평을 이루는 것은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과 지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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