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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편

시편 9편은 하나님께 감사로 시작을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 때문입니다 (1절). 그리고 이 기이한 일들이 무엇인지 3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여기서 물러간다는 것은 대적들이 후퇴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하였는지, 이들은 멸망하여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6절).

시편 9편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보좌가 심판의 자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주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의롭게 심판하시며, 정직과 공의로 판결을 내리십니다 (4, 7-8절). 하나님의 공의는 원수들을 멸하지만, 압제를 당하는 자들을 보호하시며 그들의 요새가 되십니다 (9절). 다윗이 하나님을 그토록 의지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성품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0절).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이제 시편 기자인 다윗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3절). 기도는 ‘우리’라는 개념으로 공동체를 대표해서 기도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개인적인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뭐가 옳은가 혹은 무엇이 더 중요한가의 이슈가 아니라, 나에게 어떤 상관이 있는지에 따라서 우리의 기도의 간절함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의 우선순위가 간절함을 따라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기도를 하나님께 더 많이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압제를 당하는 자들의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합니다. 오늘 시편의 마지막 절에서 다윗을 괴롭히는 원수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방 나라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20절).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은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에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치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해서, 궁핍하고 압제를 당하는 자들의 피할 요새가 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자신있게 담대히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할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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