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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편

Jul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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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편의 배경을 설명하는 표제에 “다윗의 식가욘” 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식가욘이라는 단어는 그 뜻이 불명확합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식가욘의 히브리어 어근이 되는 “샤가”의 뜻이 ‘방황하다, 길을 잃어버리다’라는 데에서 착안하여, 식가욘을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격정적인 시’로 정의를 합니다. 그리고 표제에 등장하는 “베냐민인 구시”는 시편 7편에만 언급되는 인물로, 오늘 본문의 표제를 다시 풀어드리면 “다윗의 격정적인 시, 베냐민 사람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정도로 이해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상황을 추측해 보면, 구시라는 사람이 다윗을 모함했고 이에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실 것을 호소한 것 같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가장 먼저 구원을 요청합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1절). 단순한 구절이지만 그 뜻은 깊습니다. 구원을 받아야 하는 위급한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이것이 구원을 받는 길입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나를 맡길 때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염려하는 다윗의 고백에서 그의 절박한 심정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그의 무고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을 부른 이유는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면, 3절에서 하나님을 다시 부른 까닭은 그의 무고함을 아뢰기 위해서였습니다. 3절에 “이런 일”은 다윗을 모함한 자의 소행을 가리킵니다.

6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또 다시 부르고 있습니다. 앞서 하나님을 불렀던 이유가 구원을 요청하고 자신의 무고함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면, 여기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6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 다윗은 공의의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며, 억울한 자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가 하나님의 정체성에 있는데,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11절). 하나님의 분노는 당연히 악인에 대한 분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시고,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어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십니다 (9-10절). 이것이 신실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요구되는 것은 바로 죄에 대한 회개입니다 (12절).

시편 7편은 다윗의 감사 고백으로 끝을 맺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17절).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으로 인해 감사하며, 더없이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만큼 우리는 감사할 수 있고 또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의지해서 기도하며, 나를 모함하는 자들을 심판해 주실 것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믿음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내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완전하신 나의 주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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