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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편

Jul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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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의의 하나님”(righteous God)으로 시작을 합니다. 하나님의 많은 성품 중에 “의”를 부른 이유는 시편 기자인 다윗이 억울한 오해와 누명을 벗기를 원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처한 “곤란”은 원어의 뉘앙스를 봤을 때, 시편 23편에 등장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유사한 표현입니다. 다윗이 의의 하나님에게 바랐던 것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1절에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는 간구가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2절에 기록된 상황은 다윗이 처한 곤란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생들아” 라고 불리는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애굽과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의 영향력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들이 다윗의 영광을 욕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행하는 헛된 일은 다윗의 왕권에 도전하는 것이며, 거짓과 속임수로 이러한 허사를 도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의 하나님께서는 거짓된 자들을 멸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자를 택하십니다. 이렇게 억울한 상황 가운데 경건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4절과 5절에서 두 가지 실천 사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4절에서 떨며 범죄하지 말라는 뜻은 화를 내고 분노함으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어 구절을 보시면 더 분명하게 그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In your anger do not sin.” 우리도 다윗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분노로 인해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에 있는 분노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잠잠해야 합니다.

두번째 실천 사항은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5절). 억울한 마음으로 화를 내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의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판단의 주체가 되시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나를 대적하는 자들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궁극적인 방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상황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고 그분께 온전히 나아가야 합니다.

6절에서 믿음 없는 자들의 탄식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이는 그저 사람들의 말일 뿐입니다. 세상은 힘이 있는 유력한 자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섭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더 의지해야 합니다. 모든 곤란이 해결이 된 후,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도 하나님으로 인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7-8절).


찬양: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찬송가 570장)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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