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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6편

인생을 살다 보면 억울한 오해를 받거나 누명을 쓰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때 우리가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은, 나의 무죄함을 믿어주고 변호를 해줄 어떤 사람입니다. 내편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시편 26편은 다윗의 시로 전해지며,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함과 정직함을 호소합니다. 부당한 비난과 억울한 오해를 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하나님께 변호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1절). 시인은 그의 완전함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한 것으로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정직하게 걸어왔음을 고백합니다. 사람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무죄함을 판단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억울함을 풀기 위한 최고의 방법입니다.

이어지는 3-5절은 시편 1편이 생각나게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서 주의 진리를 따라 행했으며, 허망한 사람, 간사한 자, 악한 자와 함께 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시인은 행악자의 집회 즉 악을 행하는 자들의 무리를 미워했다고 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모하여 거룩함에 거하며, 악을 미워하며 악인들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6-8절에서는, 시인의 외적인 행동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동기와 태도까지도 하나님 앞에 정직함을 주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주의 집 (성전) 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제사로 나아갈 때 제사장이 물두멍에 손을 씻는 것처럼, 그의 무죄함을 손을 씻어 나타냅니다.  7절에서 “감사의 소리”가 언급이 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무죄한 자의 구별된 모습이 바로 감사에 있음을 알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9-12절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을 악인들과 함께 심판받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죄인과 함께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시고, 이제 억울함에서 구원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은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12절) 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26편은 그 주체가 개인으로 시작해서 공동체로 끝납니다. 억울함과 혼란의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신뢰를 두고, 공동체 안에서 찬양의 자리에 서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시인의 누명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와 함께 하는 의인의 무리가 즉 믿음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도 역시 누군가의 오해와 예상치 못한 억울한 일로 원하지 않는 상처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다윗처럼,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로 나아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평가는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을 아시고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고, 믿음의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찬송가 2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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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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