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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5편

본 시편은 다윗이 지은 시로, 각 행이 히브리어 알파벳 22개의 자음으로 시작하는 ‘알파벳 시’ (Acrostic Poem) 입니다. 번역이 되면서 이러한 특징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시편 전체가 22절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시인이 자신의 기도와 묵상을 질서정연하게 드러내고, 이 시를 기억하기 쉽도록 돕습니다. 동시에 히브리어 알파벳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께 온전히 맡긴다는 신뢰의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8, 21:6, 22:13).

시편 25편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인도와 용서에 대한 간구’ (1-7절) 로 시편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의 고백’ (8-15절) 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은 시편 기자의 ‘고난 가운데 드리는 간절한 기도’ (16-22절) 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들어 하나님께 맡깁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1절). 인생의 길을 걷다가 방향을 잃거나, 어떤 실수로 인해 죄책감에 짓눌릴 때, 사람은 쉽게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주의 길을 보여 달라고 또 그 길로 인도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옛 죄를 기억하지 말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과거의 실수와 부끄러움에 머물기보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힘입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정직하신 분입니다. 시인은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8절) 라고 고백합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우리 삶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이를 친히 인도하시고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인생의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아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정직하시며, 온유한 자를 가르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본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합니다. 다윗은 그의 외로움과 괴로움, 원수들로 인한 고난과 근심을 여과 없이 고백합니다.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8절) 라고 부르짖습니다. 인생의 어둠과 시련 앞에서, 우리는 자주 무기력해집니다. 하지만 다윗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고백하고 기도함으로써, 오히려 소망을 지켜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토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약함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의지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께 나아가는 귀한 묵상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마음이 더욱 깊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내가 깊은 곳에서 (찬송가 363장)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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