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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7편

본 시의 시대적 배경은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에게 핍박을 당하여 쫓겨 다니던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핍박했던 것도 있지만, 사울의 추종자들이 다윗을 중상 모략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24:9 참고). 다윗은 사울의 군대를 피해 도망을 다니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자신의 결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억울함이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시편 17편은 크게 세 부분으로 주제가 나누어집니다. 다윗은 먼저 자신의 정직함에 대해서 선언합니다 (1-5절).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6-12절). 마지막으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고, 영원한 소망을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13-15절).

다윗이 스스로에 대해서 정직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의 의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의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로마서 3:23 참고). 다윗은 자신의 옳음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진실함을 인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숨김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실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7절에 기록된 “기이한 사랑”에서 “사랑”은 히브리어로 ‘헤세드’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출애굽기 15장에 기록된 ‘모세의 노래’ 본문에서 사용된 단어들을 사용하여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기이한 것은 주의 오른손으로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그 사랑을 의지해 그의 구원을 요청한 것입니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8-9절).

이제 다윗의 기도는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악인이 현실에서 형통하여도 그들의 행복은 일시적이며, 그들은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복으로 감사하며 자족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악인이 그들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그들의 남은 재산마저 그들의 자녀들에게 물려준다고 해도, 하나님 안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주의 얼굴을 뵙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15절).

오늘 묵상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를 드리되, 먼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경이로운 사랑을 인해 감사를 드리고, 또한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 감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악인의 형통함이 부활의 영광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찬양: 주님 한 분만으로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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