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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편

Jul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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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1절) 다윗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극심한 고통과 절망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침묵이 더 크게 다윗에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 시의 배경은 전통적으로 다윗이 사울 왕의 박해를 피해 도망다니던 시기에 적혀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섯 절 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시편 13편은 절망의 탄식에서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으로 변화되는 다윗의 내면의 여정을 잘 담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에 “어느 때까지”라는 어구가 네 번이나 반복이 됩니다. 이러한 절규는 비단 다윗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구하는 모든 믿는 자들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질문입니다. 삶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시인은 절박함에서 절망과 고독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는 근심과 함께 슬픔이 마음에 쌓여갑니다. 그리고 원수들은 그들의 승리를 자랑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렇게 애타는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그의 마음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배울 수 있는 영적인 자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하나님의 침묵이 이어질 때, 어느 누구도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 모든 마음의 생각을 하나님께 토로하는 것이 바른 영적인 자세입니다. 이렇게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절망의 자리에서, 다윗은 마침내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5절). 상황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헤세드)을 붙잡습니다.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는 것이 답이었습니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간으로 바뀝니다. 시편 기자는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해 구원의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인을 구원하실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끝을 맺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라” (6절).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멀리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반복되는 질문과 끝없는 기다림, 현실의 고난 앞에서 절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 13편에서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께 솔직하게 나아가야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과 상황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우리의 신뢰를 드려야 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침묵의 시간, 응답이 지연되는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붙잡아야 합니다. 기다림에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입니다.


찬양: 주님 보좌 앞에 나아가 (원제: 신실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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