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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편

Jul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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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1절).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도움을 간절히 구합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라는 이 표현은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라고 번역을 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말입니다.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들이 박해를 받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세상이 너무 악해서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해석을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충실한 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자를 가리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과 아첨을 남용하는 이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간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언어는 본래 서로를 세우고 진리를 전하는 도구이지만, 오늘 본문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상처와 분열을 일으키는 불신의 근원이 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거짓과 아첨은 겉과 속이 다른 말이며,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의 상태를 “두 마음”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기서 사람들이 두 마음으로 거짓과 아첨을 일삼는 이유가 자기중심적 교만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4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참 진리는 없고 오직 자신의 생각만이 진리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내뱉는 말들로 인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시편 12편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5절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전혀 다릅니다. 사람의 말은 거짓과 아첨으로 신실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습니다 (6절).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인간의 불완전함과 대비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무엇이 진리인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혼란과 거짓으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에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 시편의 말씀을 통해 거짓된 세상에서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의지하는 충실한 자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오 신실하신 주 (찬송가 39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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