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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

Jun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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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는 오늘 본문에서 제자가 더 많아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는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있었을까요? 어떤 성서 학자들은 당시 교회의 성도들을 2만에서 2만 5천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세워졌다는 것은 초대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이전에 없었던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의 성장에 따라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공동체 전체의 질서를 위해서 이 이슈는 잘 다루어져야 했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1절). 히브리파 사람이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며, 헬라파 유대인이란 여러 곳에서 흩어져 살다가 이스라엘로 돌아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매일의 구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그 구제가 생필품 지급을 위한 것이거나 혹은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제의 과정에서 헬라파 과부들이 누락이 되거나 차별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일이 오해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교회 안에 파가 나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2절). 그런데 더 큰 일은 열두 사도가 감당해야 할 말씀과 기도의 사역을 구제 사역으로 인해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구제 사역이 말씀과 기도의 사역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사도들이 구제 사역의 비중이 너무 많아져서 말씀과 기도의 사역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 이슈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세우고, 구제의 일을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3절). 그리고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는 것이었습니다 (4절). 사도들은 일곱 명의 일꾼을 택하고 안수하여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놀라운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7절). 하나님의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반대하던 제사장의 무리마저도 십자가의 도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은사가 다양합니다. 모두 같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허락하신 은사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용했을 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단, 모든 사역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은사가 무엇인지 돌아보며, 교회를 위해 어떻게 섬길 수 있을지 기도하시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위해 더욱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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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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