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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장

Jun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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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로부터 온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 와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소아시아의 이방인들이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형성하자,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사상을 전하기 위해서 안디옥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받았던 안디옥 교회에 이러한 사상은 분명 충격적인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바울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과 변론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중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에게 보냅니다. 전 교회적 차원에서 구원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예루살렘 회의가 열렸던 배경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중에 여전히 바리새파가 있었고, 그들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5절). 하지만 구원의 조건은 율법이 아닌 믿음인 것을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은 다시 한번 확실히 했습니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8-9, 11절). 그리고 이러한 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바나바와 바울은 이방인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를 간증했고, 야고보는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은혜는 방종과 달라서,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삶의 변화라는 분명한 열매가 있어야 할 것을 서신으로 전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0절).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와 관련된 모든 행위를 금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라면 마땅히 순종해야 할 삶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결정되었던 모든 사항은 이후 바울과 바나바, 유다와 실라를 통해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편지로 전해집니다 (22-23절).

예루살렘 회의가 교회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복음의 본질이 율법이 아닌 은혜와 믿음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가 더 이상 유대교의 분파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으로 독립된 공동체라는 것을 공고히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으로 인해 이방인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대한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서입니다.

예루살렘 회의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더라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바른 정의가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서 내려지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를 드리며,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묵상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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