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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장

Jun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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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처럼,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았다는 소식이 유대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 중에서 여전히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보수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베드로를 비난하게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를 힐책했던 “할례자들”은 “무할례자” 즉 이방인들과 교제하거나 식사하는 것을 무척 꺼렸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이방인과의 교제를 피했던 이유는 이방인들이 율법을 따르지 않으므로 부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방인과의 교제는 그들도 부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몰랐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도 정결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9절)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원칙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하는 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정결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한데, 이는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거룩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17절). 베드로는 성령의 세례가 예수님을 믿을 때 주신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믿음의 법칙을 동일하게 적용하신 것을 할례자들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이들은 베드로의 간증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신 것을 인정했습니다 (18절).

사도행전 11장 후반부에는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로 여러 곳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다가, 안디옥에서는 헬라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안디옥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냈고,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와서 둘이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겼는데 바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26절). 이후 안디옥 교회는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제 헌금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열방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교회의 역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인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기도로 동참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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