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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영어로는 Ash Wednesday 이며,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날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40 일간의 기간을 의미하며 (주일 제외), 금식과 절제 그리고 회개를 통해 부활절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재는 나무를 태워서 만들어지지만 흙을 의미합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b).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타락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며, 이는 인간의 유한성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습니다.

첫째 아담의 타락으로부터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되었지만, 둘째 아담이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허락하십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1절). 세례 요한이 증거했던 예수님은 물의 세례가 아닌 성령과 불의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죄의 회개를 넘어,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닌, 성령님이 내재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의 두가지 기능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회개하게 함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으로 준비시키는 것도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그의 세례를 통해 증거했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자면, 예수님께서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을 통해 물의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신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왔으며, 하늘로부터 성부 하나님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17절). 천지창조 때 나타나셨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세례에도 나타나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새로운 창조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오늘 재의 수요일을 보내며 흙으로 돌아갈 유한한 육체에 속한 나의 모습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비교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만이 아닌 겸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로 찬양을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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