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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36-75

멜 깁슨 감동의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 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장면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영화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passion) 은 외적으로는 채찍과 십자가의 형벌이었지만, 내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볼 때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예수님의 수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이 되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눅 22:44 참고). 이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모세혈관이 터져 피가 땀과 함께 배출이 되는 혈한증 (hematidrosis)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생각해보면,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전지하신 신성을 통해 십자가의 고통을 미리 보신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의 가장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어려워하셨던 이유는 단순히 육체의 고통이 심하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죄악을 대속하기 위해서 받아야 하는 십자가의 형벌의 무게를 우리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단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9절).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에서 한가지 중요한 영적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내 소원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의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물론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최선을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보다 우선이어야 합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찾아와 배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잡히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잡히신 것입니다 (53-54절).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고, 예수님은 대제사장 집 뜰에서 공회 앞에 서게 됩니다. 대제사장들과 공회는 거짓 증인들을 많이 세워 예수님을 신성모독의 죄로 몰아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이 또한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처럼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깊은 내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도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끝나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류의 구원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더라도, 예수님의 제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예수님의 사랑의 십자가를 전해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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