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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운동선수들의 평균 연습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종목에 따라 다르고, 아마추어인지 프로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에 4-6시간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올림픽 선수들은 하루 10시간까지도 훈련을 합니다. 뮤지션들의 평균 연습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악기의 종류와 연주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 4-6시간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유명한 연주자들이나 최고 수준의 뮤지션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의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운동선수들과 뮤지션들은 경기 혹은 공연이라는 한 순간을 위해서 매일마다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운동선수의 노력을 성도의 신앙생활과 비교를 합니다 (고전 9:24-27 참고). 경기에서 승리를 위해서 선수들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신앙의 여정에도 이러한 긴장감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대충 살아도 된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삶에 긴장감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우리가 영적으로 준비되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운동선수와 뮤지션들에게 경기와 공연이 목표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곧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가지 비유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는 열 처녀의 비유, 두번째는 달란트의 비유, 세번째는 양과 염소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비유의 핵심 주제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1) 열 처녀 비유는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을, (2) 달란트 비유는 맡겨진 것에 충성하라는 것을, 그리고 (3) 양과 염소 비유는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돌보고 섬기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비유는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공통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세 비유 모두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준비된 자들은 구원과 함께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되고, 준비되지 않은 자들은 심판과 함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운동선수나 뮤지션들은 다음 기회가 있을 수 있지만, 성도들에게는 다음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현실적인 삶의 변화로 그 열매가 나타납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에는 그에 합당한 삶의 변화라는 결과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를 늘 기다리고 고대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게으르거나, 영적으로 둔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매일마다 묵상하는 것도 영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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