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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장

우리는 마지막 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오는 불안한 마음일 수도 있고, 환난과 핍박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또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자연 재해를 보면서 정말 마지막 때가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두려움의 원인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인간은 모두 권선징악에 대한 무의식적 개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대부분은 양심을 따라 살아가지만, 내가 지었던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 100% 양심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성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십니다. 성자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또한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이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2000년전 이 땅에 오셨던 초림과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실 재림의 때를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의 때에는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대속물로 오셨기에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미래에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는 마지막 심판을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며 만왕의 왕으로 오시게 됩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성전이 무너질 것에 대한 예언으로 (1-2절) 시작해서 마지막 때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일어날 재난의 징조들과 (3-14절)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대환란 (15-28절),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29-31절)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말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이 심판이 코앞에 다가와도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38-39절).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당부하시는 경고의 말씀은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42절). 우리는 늘 깨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44절).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믿는 자들에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45-51절). 악한 종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를 아무렇게나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된다는 것은 주인의 귀환을 기다리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45절). 때를 따라 나눠줄 양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 이웃에게 필요한 것은 마지막 때를 준비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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