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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 5:31-32).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나타내는 장면에서도 성도들을 하나님의 어린 양의 신부로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19:7-9 참고). 어쩌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번째 표적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도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요한복음 2:1-11 참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줍니다. 여기서 아들은 예수님을 임금은 성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던 성경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혼인 잔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과 그의 신부 된 성도들을 위한 혼인 잔치입니다. 이 혼인 잔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잔치에 초청을 받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대부분은 자기 일이 바쁘다고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복음을 전하며 잔치에 초청하는 종들을 공격하고 박해합니다. 결국 악인과 의인 모두 혼인 잔치에 초대가 되지만, 예복이 없는 사람은 어두운 데에 내던져져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이 일어나게 됩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자만이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습니다 (14절).

부활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쟁점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32절). 당시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며,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주 안에서 잠자는 모든 성도들이 새로운 육체를 입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가르침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다른 가르침의 주제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늘의 권위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리스도와 다윗의 관계에서도, 혈육으로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 예언의 성취이지만, 영적으로는 다윗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주라 칭했습니다. 44절은 시편 110:1 을 참고하시면 이해하시기가 쉽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원수 사탄 마귀가 예수님의 발 아래에서 심판을 받기까지, 주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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