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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장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받아왔던 모든 교육은 일을 한 것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학교에서 받는 성적은 공부로 노력을 한 만큼 받습니다. 그리고 일을 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가끔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노력을 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이 세상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기록된 포도원 품꾼 비유는 이러한 세상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됩니다.

이른 아침, 제삼시(오전 9시), 제육시(정오), 제구시(오후 3시), 제십일시(오후 5시)에 집 주인이 품꾼들을 데려와 포도원에서 일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품꾼들에게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이슈가 생깁니다. 날이 저물고 품꾼이 품삯을 받는데, 오후 5시에 와서 한 시간을 일한 사람들이나 그 전에 와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나 동일한 삯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집 주인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완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비유가 마태복음 19장에 등장하는 부자청년 이야기와 이어진다고 했을 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유로 다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말씀이 19:30 과 20:16 에 반복되어 언급된 것에서 이 비유는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실 것과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진지하게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도,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크냐 라는 이슈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치맛바람을 날리며 아들들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것을 요구했고, 나머지 열 제자들은 이를 분하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한심한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알려줍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7-28절).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과 희생에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일 수 있습니다. 나는 교만하여 으뜸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마태복음 20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비교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제자들의 다툼에서도, 우리의 비교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묵상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며 겸손의 자리로 내려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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