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마태복음 1장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와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는 몇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부터 시작을 해서 예수님까지 내려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누가복음은 예수님부터 시작해서 아담으로 올라가는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두 족보의 형식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두 복음서의 목적과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책이라면, 누가복음은 이방인들까지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포함했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마태로 알려져 있으며, 마태복음의 대상은 앞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유대인들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는데 (1절), 이는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은 창세기 12:1-3 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고,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사무엘하 7:16 의 언약이 성취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며, 예수님이 다윗의 왕위의 영원한 계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가 유대인 독자를 대상을 기록이 되었지만, 이 족보에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통해 자녀를 낳았고,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믿음으로 다윗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의 죄악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여전히 족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실수와 연약함 가운데에서도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18절). 하지만 요셉은 이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요셉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은 이를 드러내지 않고 파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 말씀합니다 (19절). 당시 문화에서 약혼한 여인의 임신은 큰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하게 된 것을 꿈을 통해 알려줍니다 (20절). 그리고 그 꿈에서 태어날 아들의 이름까지 알려줍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1절).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구원자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을 알려줍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3절).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선지자를 통해 전해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임을 또한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22절).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그의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존재만큼의 무게가 있습니다.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