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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

신명기 24:1 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던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이 말씀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해석은 수치되는 일을 간음으로 보고 이러한 경우에만 이혼할 수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반면, 자유로운 해석은 이 수치되는 일을 광범위하게 해석을 해서 아내가 요리를 못하거나, 외모가 마음에 안 들거나, 심지어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더 좋아해도 이혼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보수적인 해석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물어본 질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제한적이었던 유대 사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성들을 존귀하게 여기셨고 늘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도망을 갔지만 여성들은 끝까지 십자가 앞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본 이들도 여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과 함께 전해야 하는 향유 옥합을 깨뜨린 자도 여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창 1:27).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도 안수하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녀들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은 동일한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통솔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까지 예수님께로 오는 것을 막았지만,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위해 안수해 주셨습니다.  

한 재물 많은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영생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에 이미 청년의 생각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것은 틀린 질문입니다.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물은 것이 아니라,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를 물었습니다. 이 청년은 선한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에 대해서 지적하시면서,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17절). 다시 말씀을 드리면, 제한된 인간은 선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선을 행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청년의 생각을 고치십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7절). 영생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선을 행해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청년은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여전히 행위적인 면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청년의 대화 전체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십계명에서 이웃 사랑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셨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되, 행위가 아닌 마음으로 따라야 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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