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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참 27:21). 칭찬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로 해석이 되지만, 칭찬으로 사람이 단련이 된다는 것은 칭찬을 통해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8장은 “그 때에” 라는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로 시작을 합니다. 마태복음 17장 마지막 부분에 성전세를 위해서 베드로가 기적을 체험하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베드로는 변화산을 올라갔었고, 특별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주목을 받자, 제자들은 ‘누가 크냐’ 에 대한 논쟁을 하게 됩니다 (막 9:33-34 참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가치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겸손에 대한 가치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4절). 이는 구원과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3절). 그리고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한 사람과 본인을 동일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작은 자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에 대해서 강한 경고를 하십니다 (5-10절).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교만이고, 교만은 모든 죄의 근본이 됩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는 것은 성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14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마음도 잃어버린 한 영혼에게 향해 있어야 합니다. 또 형제의 죄악에 있어서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두세 증인의 말로 회개를 권하고, 회개하지 않을 경우에는 교회가 다시 권면을 합니다 (15-17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최소 단위가 두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최소 단위의 제자들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9-20절). 이 모든 말씀의 공통점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마땅히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 마땅한 이치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은 일곱 번을 일흔 번가지라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할 줄 모르는 종에 대한 비유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자라면 이웃을 용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만 달란트를 오늘날 화폐로 환산을 하면 6조원이나 되는 엄청나 액수입니다. 한 개인이 갚을 수 없는 부채입니다. 그런데 백 데나리온은 500만원 정도의 액수입니다.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마지막 35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이는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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