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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

세례 요한은 짧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가까운 친척이었습니다 (눅 1:36 참고). 따라서 요한과 예수님은 사촌 관계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삶 자체가 이사야 40:3 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마 3:3, 6 참고).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마 3:15-16 참고). 요한은 그의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은 끔찍한 죽음을 당합니다. 요한은 헤롯이 그의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불법적인 결혼을 책망했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으나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기 때문에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었고, 세례 요한의 목을 선물로 달라고 청함으로, 헤롯이 요한을 죽일 수 있는 명목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세례 요한은 참수를 당합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순교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합니다. 세례 요한은 살아 있을 때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사명을 완수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순교조차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이 따로 빈 들에 가셨지만 무리가 여러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이들 가운데 있던 병자를 고치셨으며, 빈 들에 모인 큰 무리를 오병이어로 먹이셨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었습니다. 먹은 사람은 남자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진짜 목적은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소식을 듣고 빈 들에 가셨다는 것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기도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들을 고치셨고, 그들이 배고플 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무리를 먼저 보내시고 기도를 위해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23절). 그리고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돌아가셨는데, 제자들이 있던 곳이 배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시기 위해서 수영을 하신 것이 아니라 바다 위로 걸으셨습니다 (25절).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33절).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행적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세례 요한은 왜 순교를 당했으며, 예수님은 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는지 그리고 물 위를 걸으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위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나의 소명에 대해서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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