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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장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떠나보낸 후 예수님께서는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기 위해 가버나움 지역을 떠나셨습니다. 짧은 한 절 안에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사역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을 세우셨고, 가르치시고 전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공생애에서 보여주셨던 활발한 사역에도 불구하고, 옥에 갇혀 있었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했던 그가 왜 이런 회의를 품게 되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여러가지 견해가 있지만, 아마도 세례 요한이 기대했었던 민족적 차원의 메시야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로마로부터 독립을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5절). 세례 요한이 기대했던 메시야의 모습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셨던 모습이 사뭇 다릅니다. 세례 요한이 바라보았던 심판자로 오시는 메시야의 모습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2000년전 예수님의 초림은 심판이 아닌 구원을 위한 사역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2절).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던 때부터 예수님의 초림의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까지, 천국이 침노를 당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침노를 당했다는 것은 구원을 받은 자들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으로 오시는 재림의 때가 아니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 3:16-18 참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기적과 치유하심을 경험하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이러한 도시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0절).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귀를 가립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비밀은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겸손한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집니다 (25절).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 때 마음에 쉼을 얻게 됩니다 (29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8절). 딱딱하고 교만한 마음은 무거운 짐이 되지만,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은 가볍고 자유합니다. 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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