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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1-21

육체의 오감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에도 감각이 있습니다. 감각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하고 인지하는 기능입니다. 육체에 속한 일들을 오감을 통해 인지하는 것처럼, 영적인 부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영의 세계에 대해서 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해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직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참고).

오늘 본문에는 칠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 명이 먹고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였습니다. 이 기적은 앞서 마가복음 6장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과 비교가 됩니다.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먼저 있었고, 이방 지역으로 전도 여행을 다녀오신 후 칠병이어의 기적을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셨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보여주셨는데도,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 요구합니다 (11절).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지혜의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고,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표적을 보여주셨지만 여전히 또 다른 기적을 보이라 하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으시거나 광풍을 잠잠하게 하셨던 사건은 제자들만 경험했다고 해도, 칠병이어의 사건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기 때문에 이들이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영적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더 큰 기적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보시며 이 세대에 또 다른 기적을 베풀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2절). 안타까운 것은 제자들조차도 영적으로 둔감하여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14-21절).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의심하며 더 많은 기적을 요구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남은 떡 광주리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걱정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영적으로 둔감하면 하나님에 대한 생각보다 육체의 일을 먼저 걱정하게 됩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바리새인들과 같은 교만한 모습이나 제자들과 같은 영적인 둔감함이 우리 가운데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큰 기적이 아닌 매일의 작은 일에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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