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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20-35

오늘 본문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29절인데, 성령을 모독하는 죄에 관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29절). 성령을 모독하는 자가 누구인지 그러한 죄가 어떤 죄인지 해석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전 개역 한글에서는 성령을 훼방하는 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모든 논쟁의 시작점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을 오해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는데, 이를 미쳤다고 합니다 (21절). 그러자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해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서기관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2절). 한마디로 예수님이 귀신이 들려서 귀신을 내쫓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알세불이라 하는 귀신의 왕의 힘으로 약한 귀신들을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논쟁에 대해서 두가지로 대답을 해 주십니다. 첫째는 영적인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를 한 것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결국 망하게 되고, 집이 스스로 분쟁해도 설 수 없는 것처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들도 망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27절에서 귀신을 내쫓으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알려주시는데, ‘강한 자’는 사탄을 가리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은 이 강한 자를 결박하고 그 집을 강탈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탄과 사탄을 따르는 귀신을 결박하고 내쫓는 것은 강한 자보다 더 강한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탄을 완전히 결박하여 내쫓는 힘과 권세가 필요한데 사탄끼리 싸워서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이들을 완전히 압도하는 힘이어야 합니다.

논쟁에 대한 두번째 답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언급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나는데 실제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가리켜 귀신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님을 귀신이라고 한 이 자들이 결코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를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의 권세를 통해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로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 안에서 승리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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