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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13-28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7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체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거룩한 의인으로 생각했고, 세리와 같은 죄인과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교만한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하는 세리와 같은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러한 영적 원리는 금식에 관한 논쟁 (18-22절) 과 안식일에 대한 논쟁 (23-28절) 으로 이어졌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행위인 금식을 통해서 거룩함을 추구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지적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혼인 잔치의 신랑과 같은 존재로 오셨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행위로 거룩하게 되고 그 거룩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종교적인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낡은 가죽 부대는 종교적인 행위를 추구하는 것이고, 새 포도주를 다은 새 부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금식 논쟁은 안식일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이는 십계명에도 기록되어 지키게 한 하나님의 율법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자른 것이 불법이라고 지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동일한 영적 원리로 말씀해 주십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7절).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이유가 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을 얻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종교적인 행위 자체를 위해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채 형식만 추구하는 종교화 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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