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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9장

09/05 묵상 가이드


 

성경에는 많은 기도문이 등장합니다. 의인 10명을 위해서 기도했던 아브라함의 기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생명을 걸었던 모세의 기도, 아들을 간구하는 한나의 기도 등 많은 기도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민족의 죄악을 대신해 자복하며 회개하는 다니엘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기도에는 기도를 하게 되는 이유와 배경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오늘 본문의 기도를 하나님께 간절히 드린 이유는, 예언서를 연구하다가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예레미야 25:11-12 혹은 29:10 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 기간을 70년으로 이미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다니엘은 70년 포로 기간이 끝나고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깨닫고,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결단합니다. 이는 자복하며 회개하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다니엘은 개인이 아닌 민족을 위해서 회개합니다. 개인의 회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개념으로 민족 전체를 끌어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기도이지만 다니엘이 이렇게 기도했던 까닭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의 근본적인 이유는 회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였습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19절). 어떤 분들은 이 구절에서 한국 교회의 ‘주여 삼창’이 나왔다고 해석하시는 분도 있습니다만,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을 주의 영광을 위해서 회복해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기도의 근거가 개인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다니엘서 9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때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한 이레는 7년이고,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완성을 “일흔 이레”로 말씀하셨습니다 (24절). 70 이레는 다시 7 이레와 62 이레로 총 69 이레가 지나고, 마지막 때에 한(1) 이레가 남게 됩니다 (25- 27절). 이 마지막 한 이레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예수님의 사역과 교회 시대로 보거나 혹은 종말론적으로 7년 대환란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적인 해석을 접할 때 두려움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해석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때와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7).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아닌 평안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특별히 우리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우리의 모든 간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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