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다니엘 6장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죽고 메데의 다리오 왕이 새로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메데의 다리오 왕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견들이 있습니다. 메데 제국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 바사(페르시아) 제국으로 흡수됩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메데의 왕 계보에는 다리오라는 이름의 왕이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가지 설들이 제기되는데, 다리오와 바사의 고레스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 고레스가 임명한 구바루 총독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다니엘서에서 “다리오”를 왕의 칭호처럼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의할 점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도왔던 바사 제국의 다리오 왕은 다니엘서의 다리오와 다른 인물입니다)

다니엘서 6장은 사자 굴 사건으로 유명한 본문입니다. 바벨론 시대가 끝나고 메데-바사 제국이 새롭게 시작될 때, 다리오 왕이 새로운 제국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다니엘이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왕의 총애를 받게 됩니다. 백이십 명의 고관과 그 위에 총리 셋이 있었는데, 다니엘은 총리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모든 고관과 총리보다 뛰어났습니다. 이에 다니엘은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되었고, 총리와 고관은 늘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허물도 고발할 근거도 찾지 못한 그들은 다니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계략을 세웁니다.

왕에게 한 금령을 내리게 제안을 하는데,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입니다. 다리오 왕은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이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0절).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보다 더 클 수는 없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가는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이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도 살아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당사자인 다니엘은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다니엘을 아끼던 다리오 왕은 이 일로 인해서 금식하며 잠자기를 마다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곤경에 빠뜨렸던 자들을 사자 굴에 던져 넣었고, 다니엘을 구원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다니엘의 신앙을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다니엘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아름다우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위협을 앞에 두고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진짜였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보내는 그 시간을 어찌 다른 것들에 빼앗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다니엘처럼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에 최우선순위를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참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