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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4장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야고보서 4:6).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꺾으시고 겸손한 자를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이토록 싫어하시는 것은 교만이 바로 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만이란 하나님의 자리에 스스로를 앉히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이사야 14:12-15). 그리고 사탄의 유혹으로 타락한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으로 인해서 넘어졌습니다 (창세기 3:5-6). 교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가 됩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편 10:4).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은 그의 모든 생각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만과 반대로 겸손한 마음은 사람들을 하나님에게로 이끕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가난한 마음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상태입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자를 찾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만은 하나님이 없다 하지만, 겸손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오늘 본문은 느부갓네살 왕이 어떻게 그의 교만한 상태에서 겸손한 자로 변화할 수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지난 번에 이어 두 번째 이상한 꿈을 꾸게 되고, 그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 다니엘을 부르게 됩니다. 왕이 꾸었던 꿈에서 크고 견고한 나무는 왕을 뜻했습니다. 하지만 왕이 교만했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한 순찰자가 그 나무를 베라 합니다. 이는 교만한 왕이 들짐승과 같이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일곱 해를 지난 후, 하나님께서 다시 왕을 회복하실 것을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두는 것으로 알려주셨습니다.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한지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을 바라보며 교만하여 스스로를 높일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서 그의 왕위를 잃어버린 것을 듣게 됩니다. 하늘의 소리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32절).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왕을 낮추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총명이 다시 돌아온 느부갓네살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원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37절).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들은 복된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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