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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2장

많은 이단들이 종말론을 쓰는 바람에 정작 교회에서 종말론을 다루는 것이 어색해진 것이 현대 교회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도 아시고 미리 예언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장면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서 물었을 때 이단의 출현을 가장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 24:4-5). 이단들의 특징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세상의 끝이 와도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인 12장은, 헬라 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11장보다 좀 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1장에 등장하는 비천한 북방 왕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묘사하고 있으며, 그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예표로 해석이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에는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9장에 기록된 70이레에 대한 예언 중 마지막 7년이 인류의 종말이며 큰 환난이 있을 것을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환난이 모두 끝난 후 모든 인류가 심판을 받고 영생과 영벌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2절). 그리고 의인에 대한 보상 즉 상급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 그리고 4절에서, 10장부터 시작된 환상에 대한 말씀이 끝을 맺습니다.

이어 등장하는 5-9절의 말씀은 마지막 7년의 환란 기간 중 “한 때 두 때 반 때” 즉 ‘1년+2년+1/2년’에 있을 교회를 향한 핍박과 박해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 적그리스도가 박해를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안티오쿠스의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게 된 것을 의미하며, 종말론적으로는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기한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시고 성도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1-12절에 등장하는 1290일과 1335일은 많은 논의가 필요한 난해한 구절입니다. 3년 반이라는 기간이 1260일인데, 3년 반을 기준으로 봤을 때 1290일은 30일이 더 길고, 1335일은 이보다 45일이 더 깁니다. 본문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바탕으로, 1290일은 환란의 기간을 그리고 1335일은 복을 누리기 시작하는 때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난의 기간이 주어지는 이유는 10절에 기록된 것처럼, 알곡과 쭉정이가 나뉘어지고 양와 염소가 나뉘어지는,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의 환란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의인의 기준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여기서 이단 사상은 행위로 구원을 받을 것을 요구하며 많은 희생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참된 믿음은 예수님 안에 머물며,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나님께서 성도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모두 그들의 믿음을 지켰던 것처럼, 우리도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어야 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3절).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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