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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1장

오늘 본문에 기록된 환상의 역사적 배경은 헬라(그리스) 제국입니다. 헬라 제국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제국을 세운 정복자로 잘 알려진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으로 헬라 제국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이었던 필립 2세의 아들로, 기원전 336년에 아버지가 암살을 당한 후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가 왕이 되고 불과 10여년 만에 그리스, 페르시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북서부까지 점령을 합니다. 하지만 기원전 323년에 33세의 나이로 병에 걸려 요절을 합니다. 제국의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알렉산더 대왕이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국은 분열이 되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후계자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과정을 가리켜 ‘디아도코이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헬라 제국은 네 개의 왕조로 분열이 되는데, 앞서 9월 4일 묵상 가이드에서 알려드렸던 것처럼, 헬라의 4대 왕조는 프톨레마이오스(이집트), 셀레우코스(시리아/메소포타미아), 안티고노스(마케도니아), 리시마코스(소아시아) 왕조입니다. 그리고 4대 왕조 중에서도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 왕조가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헬라 제국의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나마 알려드린 이유는, 본문에 기록된 환상이 헬라 제국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절에 등장하는 “한 능력 있는 왕”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키고, 4절은 헬라의 4대 왕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 이하에 등장하는 남방 왕은 이집트를 기반으로 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뜻하고, 북방 왕은 시리아 지역의 셀레우코스 왕조를 의미합니다. 19절까지 이 두 왕조의 갈등과 전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5-9절은 이 두 왕조의 첫 번째 전쟁을, 10-15절은 두 번째 전쟁, 그리고 16-19절은 북방 왕의 승리 이후의 몰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20절에서 본 장의 마지막 절까지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한 왕을 묘사하는데, 역사적으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가리킵니다. 20-24절은 비천한 사람이 속임수로 북방 왕이 되는 것을, 25-28절은 그가 남방 왕과의 조약을 깨고 공격하는 모습을, 29-35절은 남방 왕을 다시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돌아가던 북방 왕이 성전을 더럽히고 모독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6절에서 마지막 절까지는 안티오쿠스의 적그리스도적인 행적과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역사 속 실존 인물이지만, 예언적 의미로 종말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그림자로 해석이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한 사건에서, 세상의 제국이란 끝없는 권력을 향한 적그리스도적 욕망의 실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끝은 멸망이며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히 서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안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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