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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 때였습니다. 여리고 성을 여행하고 있을 때, 여행가이드가 어떤 나무를 보여주면서 그 나무가 삭개오가 올라갔던 돌무화과나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꽤 큰 나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무가 정말 2000년전 삭개오가 올라갔던 나무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셨을까요? 물론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당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경로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서 여리고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당시 세리는 매국노와 같이 취급되었습니다. 그들은 공식적인 죄인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수군거리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선포하셨습니다 (9절).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신 것입니다 (10절). 구원은 예수님을 “즐거워하며 영접하는” 것입니다 (6절). 그리고 구원의 열매는 삶의 변화에 있습니다 (8절).

예수님께서 이 때 한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은 열 므나 비유’ 인데,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 와는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10, 5, 1 으로 종들에게 다르게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는데, 므나 비유에서는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남긴 이윤을 따라 상과 벌을 줍니다. 달란트 비유와 비슷한 점은 벌을 받은 종이 므나를 수건으로 싸 두었던 이유가 주인을 오해하고 무서워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구원이 있은 후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삭개오는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6절). 구원은 예수님을 즐거워하며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 되심을 기뻐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들의 마지막은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27절).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다른 태도는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을 들어가실 때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뻐하는 자들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37-38절), 어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39절).

오늘 본문 마지막 이야기인 성전청결 사건에서도 예수님을 싫어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예수님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완전히 다른 두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기뻐하며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과 동행하시면서, 나는 얼마나 주님을 기뻐하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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