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 김정훈 목사
- Dec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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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 때였습니다. 여리고 성을 여행하고 있을 때, 여행가이드가 어떤 나무를 보여주면서 그 나무가 삭개오가 올라갔던 돌무화과나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꽤 큰 나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무가 정말 2000년전 삭개오가 올라갔던 나무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셨을까요? 물론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당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경로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서 여리고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당시 세리는 매국노와 같이 취급되었습니다. 그들은 공식적인 죄인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수군거리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선포하셨습니다 (9절).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신 것입니다 (10절). 구원은 예수님을 “즐거워하며 영접하는” 것입니다 (6절). 그리고 구원의 열매는 삶의 변화에 있습니다 (8절).
예수님께서 이 때 한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은 열 므나 비유’ 인데,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 와는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10, 5, 1 으로 종들에게 다르게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는데, 므나 비유에서는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남긴 이윤을 따라 상과 벌을 줍니다. 달란트 비유와 비슷한 점은 벌을 받은 종이 므나를 수건으로 싸 두었던 이유가 주인을 오해하고 무서워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구원이 있은 후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삭개오는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6절). 구원은 예수님을 즐거워하며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 되심을 기뻐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들의 마지막은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27절).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다른 태도는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을 들어가실 때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뻐하는 자들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37-38절), 어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39절).
오늘 본문 마지막 이야기인 성전청결 사건에서도 예수님을 싫어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예수님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완전히 다른 두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기뻐하며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과 동행하시면서, 나는 얼마나 주님을 기뻐하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