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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3장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평소에 자주 쓰지 않는 단어가 나옵니다. “자천”이라는 단어입니다. 스스로를 추천한다는 뜻이지만, 어떤 번역에서는 자화자찬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구절에 “추천서”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자기추천서의 개념으로 “자천”을 이해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배경에는, 바울의 대적자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불신하도록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선동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바울의 사도직이 의심될 경우, 그동안 바울이 전하고 가르쳤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의 사도직을 보호하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사도직을 증명해주는 편지는 일반적인 추천서가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먹으로 쓴 편지보다 더 분명한 것은 성령으로 변화된 성도들이며, 이들이 바로 사도 바울의 사역의 열매인 것입니다. 이들은 먹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돌판이 아니라 마음판에 기록된 편지입니다 (3절).

바울은 이어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와 같은 사역의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께서 바울과 동역자들을 사용하시는 것을 언급하며, 스스로를 “새 언약의 일꾼”으로 부릅니다 (6절). 여기서 옛 언약은 “율법 조문”으로 세워진 것을 뜻하며, 새 언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심으로 성립이 된 것입니다. 옛 언약은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한계가 있다면, 새 언약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에 민족적 한계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됩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생명과 성령으로 나타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7절).

모세의 얼굴을 가렸던 수건에 대한 부분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백성들이 두려워 모세에게 가까이하지 못하자 모세는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모세의 입장에서 해석을 했습니다. 모세는 그의 얼굴의 광채가 일시적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혹시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해석합니다 (13절). 하지만 새 언약의 일꾼이 된 바울은 복음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복음은 절대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1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사명을 위한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새 언약의 일꾼들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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