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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장

부모에게 자녀들을 키우면서 가장 힘들 때를 꼽으라면, 아마도 아이들을 훈계하고 난 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바로 양육하기 위해서 때로는 매도 들어야 하지만, 그렇게 혼을 내고 나면 부모가 더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후서 2장에는 이러한 부모의 심정과 같은 사도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2장의 구조는 (1) 사도 바울이 눈물로 편지를 쓴 이유 (1-4절), (2) 교회를 근심하게 만든 자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 (5-11절), 그리고 (3) 믿는 자들이 가져야 할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정체성 (12-17절) 입니다. 사도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쓴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분쟁, 음행, 거짓 교사, 바울에 대한 불신 등과 같은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다시 방문할 때 엄하게 그들을 꾸짖는 것보다, 서신을 통해 미리 책망하여 그들이 회개에 이르고, 실제 방문에서는 기쁨으로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 앞서 일명 ‘눈물의 편지’를 적었던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4절). 이 눈물의 편지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근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변화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눈물의 편지였습니다. 바울의 넘치는 사랑이 있었기에, 눈물로 이 편지를 적었던 것입니다.

용서에 대한 충고는 몇 번을 반복한다고 해도 또 다루어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화해와 용서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1절에 기록된 사탄의 계책이란 공동체를 흔들고 파괴하는 것이입니다. 죄를 지었는데 그냥 넘어가는 것도 용서를 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것도 모두 공동체가 하나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마지막으로 본 장에 언급된 “그리스도의 향기”는 성화의 삶에 초점을 맞춘 성도의 새로운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냄새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사망에 이르는 냄새와 생명에 이르는 냄새입니다 (16절). 냄새는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생각, 말투, 행동 등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착한 척하는 것도 몇 번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본인의 모습을 숨기고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진 자들입니다. 매일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교회를 사랑했던 사도 바울의 애틋한 마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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