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고린도후서 1장

고린도후서의 배경을 간략히 말씀을 드리면,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 도중 마게도냐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린도 교회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신(잃어버린 첫번째 편지와 고린도전서)을 보냈지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이 마저도 성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바울은 눈물의 편지(혹은 근심의 편지)로 불리는 세번째 서신을 디도를 통해 고린도 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이후 디도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회개의 소식을 듣게 되고, 이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 고린도후서를 다시 보내게 됩니다. 첫번째와 세번째 편지는 잃어버린 서신이고, 두번째와 네번째 서신은 고린도전서와 후서로 남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전체 구조는 디도로부터 받은 소식을 듣고 교회에 대해 안도하고 있음을 알리고(1-7장), 예루살렘의 교회를 돕기 위해서 구제 헌금을 독려하며(8-9장), 사도 바울 스스로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있습니다(10-13장). 고린도후서는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적혀진 사도 바울의 가장 개인적이고 목회적인 편지로 알려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환난 중에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3-4절).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죽을 뻔한 고난에 대해서 함께 나누며,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음을 증언합니다. 이는 환난 가운데 위로하시는 주님을 만났던 바울의 경험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구원과 위로가 있을 것임을 확신하게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은 고린도후서 전체의 주제가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는 육체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모습이 됩니다 (12절). 그리고 미쁘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를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가 됩니다 (19-20절). 또한 우리 마음에 내재하시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이 되십니다 (21-22절).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되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이를 친히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어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미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