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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8장

저는 시루떡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릴 때는 시루떡이 제사용으로 쓰이는지 몰랐습니다. 가끔 이웃에서 시루떡을 나누어 줄 때 제사에 사용되었던 떡인 것을 알았다면 먹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아무 상관없이 맛있게 떡을 먹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제사에 올렸던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아니면 먹을 수 없느냐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우상 숭배에 사용되었던 제물이 시장에 팔렸고, 이러한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1절). 사도 바울은 이 이슈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식이 아닌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8절). 음식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이 지식을 가진 자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자유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자유로 인해 믿음이 약한 형제들이 실족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은 자유함이 없는 자들을 말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양심에 거리끼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양심을 어기는 것은 그들의 믿음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유하여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만약 교회에 형제들이 믿음이 약하다면, 이들을 위해서 나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이슈에 대한 결론은 13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우상의 제물이 대부분 고기인데, 사도 바울은 형제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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