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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장

오늘 본문의 1절에 등장하는 “일꾼” 이라는 단어는 종 (servant) 이라는 의미보다 노예 (slave) 라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권위는 무시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바울을 판단하고 또 무시한다고 해도 이는 바울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판단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4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2절).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사도 바울만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자가 아니라,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6-7절은 이해하기가 어려워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을 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세가지 질문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1)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라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만 특별하게 세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 모두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2)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은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너희가 그것들로 인해서 교만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라는 질문은 (2)번 질문과 같은 뜻인데, 너희가 가진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선물인데 왜 너희 것인 양 자랑을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교만을 꾸짖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0절에서 반어법을 사용하며, 복음을 위해서 위험에 처하고 박해를 받고 있는 바울의 상황과 안락한 가운데 교만하여 서로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을 말씀하며, 그들이 교만하여 분쟁하는 것이 모두 가짜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충고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전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4-15절).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이 애타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충고하고 있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심정으로 전해졌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 마음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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