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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35-58

오늘 본문 말씀은 어제 본문에 이어서 부활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전반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부활이 왜 중요한지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에서는 부활의 신비와 영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땅에서 부활 이후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35절에서 바울은 두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묻기를 (1)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2)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그리고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사도 바울은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첫째,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 것일까요? 여기서 바울은 씨가 땅에 심겨지고 다른 형체의 식물이 자라는 것으로 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따라 죽은 자들을 다른 형체로 살리실 것을 말씀합니다 (38절). 둘째, 그렇다면 다시 살아날 때 어떤 몸으로 부활하게 될까요? 이에 대한 답은 지금 우리가 가진 육의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4절).

우리는 여전히 부활 이후에 가지게 될 신령한 몸이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보여주신 모습에서 신령한 몸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 요한복음 20:19, 누가복음 24:30-31). 하지만 예수님의 몸은 손으로 만져지는 육체였습니다 (요한복음 20:27). 그리고 생선도 잡수셨습니다 (누가복음 24:41-43). 부활 후에 우리가 가지게 될 영의 몸은 지금 이 땅에서는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 있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예수님과 같이 신령한 몸을 입게 될 것을 영적인 논리를 설명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아담의 후손으로 아담과 같은 흙에 속한 형체를 가지게 된 것같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과 같은 영에 속한 형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2-53절). 여기서 나팔 소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때 울려 펴지게 될 나팔 소리입니다. 또 썩는 것은 육의 몸이고, 썩지 않을 것은 영의 몸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더 이상 사망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은 이유가 바로 부활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한 영혼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에 가장 큰 가치가 두어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 때 그 영혼이 함께 부활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58절).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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