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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장

고린도전서 11:1 은 문맥의 흐름상, 10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2절부터 새로운 주제가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본받으라는 것은 10:33 에 말씀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물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이타적인 삶은 다른 종교나 철학으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이타적인 자세는 복음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2-16 은 예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슈는 당시 공예배가 드려질 때, 여자들이 수건을 써야 한다는 관습이 있었는데, 여자들이 남자들과 동등함을 주장하며 수건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회에서 이러한 이슈가 없지만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는 예배의 질서에 있어서 다루어져야 하는 논쟁거리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묵상을 할 때 한가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남자와 여자의 존재적인 우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창조의 질서를 통해 예배애도 영적인 질서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는 연합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1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남자와 여자의 우위적 차이가 아닌 사랑의 연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합에서 영적인 질서가 흐르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3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영적인 질서를 따라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17-34 은 성만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찬 예식을 시작할 때 이 말씀을 봉독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유월절 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알려주며, 모든 믿는 자들이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는 이렇게 거룩한 성만찬이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는 식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1절). 당시 성찬은 애찬과 결합된 형태였는데, 오늘날 점심식사 친교가 성찬 예식과 결합되었다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던 사람들은 먼저 모여서 친교를 시작해서 취하기까지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늦게까지 일하고 와서도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파가 나뉘고 사랑이 없는 성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적인 질서가 흐르는 교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경험되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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