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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장

히즈윌의 <광야를 지나며>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를 보면,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이 광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모든 광야의 여정이 결국 나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 찬양의 가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1절). 이방인이었던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나서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과 상관이 없는 다른 민족이 아니라, 이들의 영적인 조상이 된 것입니다 (1절). 이스라엘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생활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먹고 마시는 이미지가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신 것과 (3-4절)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 먹고 마시는 것 (7절),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과 (16절)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 (21절) 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먹고 마실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31절).

우리가 먹고 마시는 행위는 단순히 육체의 생존을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식탁에 참여하느냐는 중요한 결정입니다. 우리가 함께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곧 내가 속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교회의 성찬과 애찬은 살아계신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는 식탁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음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시험에 빠졌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떡과 잔을 나누는 사랑의 식탁이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12절).

오늘 묵상 가운데 우리가 어떤 시험에 넘어지게 되는지 스스로를 살펴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상 숭배와 음행, 원망하는 것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시험이 있겠지만 우리에게 피할 길을 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13절). 광야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모두 함께 하나가 되어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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