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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장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내용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복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복음은 율법의 행위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둘째는 복음은 육체의 방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다고 해서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이단 사상입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5장은 이 두 가지 관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갈라디아 교회에 침입한 거짓 교사들인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경고와 함께,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라고 권면합니다 (1절).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자유하게 되었는데, 다시 율법을 지키려는 종의 자리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율법주의자들처럼 직접적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마음 가운데 인간의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은 성경에 없는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이 말이 나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열심히 봉사하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율법의 행위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으니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3절).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는 복음의 삶을 산다면 (갈 2:20), 우리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거룩하신 능력으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는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6절).

성령의 열매에 대한 설명은 복음에 대한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우리의 정체성이 변화되고, 예수님과 매일마다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나의 노력이 아닌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 이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가 바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복음으로 살아가는 증거가 됩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신앙 생활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육체의 방종도 아닌, 오직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며 기뻐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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