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장
- 김정훈 목사
- Dec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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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견인이란 당시 로마의 법률에서 부친이 사망한 뒤에 남아 있는 미성년을 위해 관리인을 세우는 제도였습니다. 그리고 청지기는 특별히 그 가정의 재정을 관할하는 자였습니다. 미성년이 성년이 되었을 때 혹은 그의 아버지가 정한 때가 될 때 비로소 이 사람은 주인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자이지만 율법 아래에 있을 때는 초등학문 아래에서 종 노릇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은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입니다 (4절).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서 주어진 율법 아래 계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에 나신 이유는 율법의 정죄로 죽게 된 인간의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인류의 죄값을 “속량”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속량은 한자로 ‘속죄할 속’과 ‘좋을 량’을 쓰는데, 여기서 ‘량’은 ‘자유하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속량의 사전적 의미는 값을 치르고 노예를 풀어 주어 자유인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첫번째 성도들에게 “아들의 명분”을 주고 (5절), 두번째 “아들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성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우리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사도 바울은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아는데 어찌 우리가 종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해 나은 아들 이삭을 인정하셨고, 여종 하갈을 통해 나은 이스마엘은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은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난 자입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에서처럼 율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오늘날에도 율법을 대신해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닌 종교 생활로 전락해 버린 신앙 생활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정죄하며, 자기 스스로에게 종교 생활이라는 멍에를 지게 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자유합니다.
오늘 하루 성령 충만하며, 주 안에서 자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