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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바울은 3장에서 율법의 행위와 믿음 이 둘 중에 무엇이 진짜인지 확실하게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은, 율법과 율법의 행위는 다른 것입니다. 율법은 사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율법도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다만 율법의 기능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24절). 율법의 행위는 인간 스스로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있고, 그래서 행위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 아닌 율법의 행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부터 였는지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부터 였는지를 묻습니다.

성령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하시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율업의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우리의 죄가 속량되어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입게 된 것입니다 (13절).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14절).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1절). 이 믿음에는 한 가지 약속이 주어졌는데 바로 “성령의 약속”이었습니다 (14절).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가 됩니다 (26절). 이는 또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자가 되는 것입니다 (29절). 

우리가 믿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해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옷 입었습니다 (27절). 예수님과의 연합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세례의 참된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를 못 박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은 관념적인 것이 납니다. 예수님과 연합할 때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구원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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