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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

갈라디아 지방은 옛지명으로 아시아 지역과 갑바도기아 지역 사이에 위치하던 지역으로 터키 중부 지방을 말합니다 (참고: KCM사전).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의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서신으로 (1-2절),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해 들어와 있던 ‘율법주의 이단’에 대한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주의자’로 불리던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율법주의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한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하고 특별히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갈라디아서의 배경을 이해하고 오늘 본문을 묵상하신다면, 사도 바울이 어떠한 마음으로 이 서신을 적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의 권위가 성자 예수님 뿐만 아니라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이 권위는 사람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의 권위가 중요한 것은 그가 전파한 복음의 근원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의 첫 인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6-7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단 사상은 예수님의 복음을 아주 교묘하게 바꿉니다. 사탄의 거짓말이 그렇습니다. 100% 거짓말이면 의심하기가 쉬운데, 80% 참말에 20% 거짓말을 섞으면 헷갈리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이단 사상에 격분하여 서신을 적습니다. 진리를 수호해야 할 뿐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이단에 빼앗겨 잃어버릴까 걱정하는 사도 바울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이 그의 권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1-12절). 사도 바울은 이 계시를 혈육이나 다른 사도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에서 삼 년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6-17절). 

마지막 때 영적 전쟁은 진리의 싸움입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게을리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도우실 수 있도록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중요합니다. 모두 함께 복음의 진리 앞에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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