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version="2.0"><channel><title><![CDATA[One Church]]></title><description><![CDATA[One Church]]></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daily-devotions</link><generator>RSS for Node</generator><lastBuildDate>Sun, 05 Jul 2026 23:24:38 GMT</lastBuildDate><atom:link href="https://www.onechurchnj.org/blog-feed.xml"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item><title><![CDATA[요한복음 21장]]></title><description><![CDATA[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2절에 기록된 일곱 명의 제자들이 베드로를 따라 어부라는 직업으로 돌아갔습니다. 반이 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전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분명한 것 한가지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스스로를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3절) 는 베드로의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비록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믿지만, 예수님을 배신했던 베드로는 더 이상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21%EC%9E%A5</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d359b47a7f91ae61aff</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Sat, 14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20장]]></title><description><![CDATA[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망이 끝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첫번째 반응은 누군가가 예수님을 무덤에서 가져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우리는 종종 부정적인 해석을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확인했지만 이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녀 곁에 서 계셨지만, 그녀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부르십니다. “마리아야” (16절).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녀의 눈이...]]></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20%EC%9E%A5</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cf3ce85b49c3c4d3ce1</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Fri, 13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9장]]></title><description><![CDATA[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종, 그리고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왕권입니다. 빌라도는 여러 번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4, 6절). 그럼에도 그는 군중의 압력 앞에서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인간 권력의 나약함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라” (11절). 이 말씀은 십자가 사건이 우연이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어주신 것입니다.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9%EC%9E%A5</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cb638520286278de3de</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Thu, 12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8:28-40]]></title><description><![CDATA[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서 계신 장면을 보여줍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은 심문을 받는 죄인이고, 빌라도는 권력을 가진 재판관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영적인 실상을 보여줍니다. 묶여 서 계신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왕이시고, 판단하는 자처럼 보이는 빌라도는 오히려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불법과 타협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면서도, 자신들이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관정 안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유월절을 지키겠다는 경건한 모습이지만,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종교적인 열심을 나타내 보일 수 있지만, 마음은 얼마든지 진리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3절) 빌라도는 지금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그 결이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8-28-40</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c7973364b8eee6c4f6e</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Wed, 11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8:1-27]]></title><description><![CDATA[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요한은 이 상황이 일어난 때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유다가 군대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 그들의 손에 등과 횃불과 무기가 있었던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등불을 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어둠에 속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피하고자 하셨다면 얼마든지 피하실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4절) 예수님께서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내가 그니라” (5절). 예수님의 이 한마디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신적인 권위를 보게 됩니다. 무기를 든 자들보다 예수님의 말씀이 더 강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붙잡히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제자들을...]]></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8-1-27</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c18a0be590c66db1b15</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Tue, 10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7장]]></title><description><![CDATA[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기도는 스케일이 너무 크고 깊어서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드렸던 기도로 그 중요성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 (1-5절), 둘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 (6-19절), 셋째는 미래에 예수님을 믿게 될 모든 성도들을 위한 기도 (20-26절) 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1절). 여기서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때를 뜻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 자신이 영화롭게 될 것을 기도합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는 영광의 길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궁극적으로...]]></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7%EC%9E%A5</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bdcfcf8cfb9c27d6f6a</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Mon, 09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6장]]></title><description><![CDATA[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6장을 짧게 요약한다면,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던 팔복의 마지막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0-12).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만 해도 제자들은 이미 많은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박해를 받고 출교를 당하고 순교까지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2절). 하지만 이 말씀을 하신 까닭은 오히려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1절). 하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6절).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주...]]></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6%EC%9E%A5</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ba47debdcb60bb753bc</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Sat, 07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5:9-27]]></title><description><![CDATA[일반적인 사랑의 개념은 보통 감정을 그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마음에 끌리고, 편안하고, 함께 있고 싶은 느낌에서 사랑이 출발합니다. 하지만 감정은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감정이 변하면 사랑도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자기 만족이 그 중심에 있고,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조건과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그 기준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0절). 예수님께서도 성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고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2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5-9-27</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b4a73364b8eee6c4ce2</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Fri, 06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5:1-8]]></title><description><![CDATA[우리는 모두 결과로 자신을 평가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자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일해야 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참포도나무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시고,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시며, 가지는 제자들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한가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4절). 얼핏 생각하면 오늘 본문 말씀도 결과로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우리의 삶 가운데 맺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5-1-8</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b109b47a7f91ae6165e</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Thu, 05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4:16-31]]></title><description><![CDATA[예수님께서 성령님을 가리켜 “보혜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보호하고(保) 은혜를 베풀어(惠) 가르치는 스승(師)'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인데, ‘옆에’ (파라) 라는 단어와 ‘부름받은’ (클레토스) 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도움을 주거나 변호를 위해 옆에 붙여준 자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보혜사란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대언자라는 뜻과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위로하고 도와주시는 조력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 있습니다.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약속인지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7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4-16-31</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abe73364b8eee6c4bb7</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Wed, 04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4:1-15]]></title><description><![CDATA[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근심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들이 따르고 의지하던 예수님께서 제자들 중 한 명이 배신하고 예수님을 팔 것을 말씀하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떠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을 때, 제자들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절)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가시려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곳에 (우리를 포함한) 제자들의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다시 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3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과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예비되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4-1-15</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a80cf81212a9feb04cc</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Tue, 03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3:21-38]]></title><description><![CDATA[‘동상이몽’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같은 침상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시고 이제는 제자들과 함께 떡을 나눕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가룟 유다, 시몬 베드로 그리고 요한 (그가 사랑하시는 자) 이 등장을 합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과 같은 식탁에 있지만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21절 b). 그곳에 있었던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 것인지 서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누가 예수님을 팔려고 하는지 알기 원했고, 요한은 예수님에게 그 배신자가...]]></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3-21-38</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a1d9b47a7f91ae6143a</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Mon, 02 Feb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3:1-20]]></title><description><![CDATA[“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절).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다시 하나님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마지막 순간에 그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오늘 말씀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는 것은 육체의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순종으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제자들을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1절의 말씀과 대조되는 구절이 3-5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사랑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발을 씻기시는 행동은 단순한 낮아지심이 아닙니다. 여기에는...]]></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3-1-20</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92ece85b49c3c4d345f</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Sat, 31 Jan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2:20-50]]></title><description><![CDATA[오늘 본문의 묵상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영광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20-36절은 하나님의 영광이 곧 십자가의 길인 것을 알려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것을 말씀합니다. 37-43절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영광을 더 구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44-55절은 마지막 날 심판이 있을 것을 알려주시며, 영생의 구원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 가운데 말씀하셨던 “때”는 그의 십자가과 부활의 때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헬라인은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고,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빌립과 안드레가 이들의 방문을 예수님께 전했을 때,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음을 말씀하셨습니다 (23절). 이는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이 유대인을 넘어, 온 세상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방인의 등장이 이를 알리는 신호가 된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2-20-50</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8dbcf81212a9feb0128</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Fri, 30 Jan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2:1-19]]></title><description><![CDATA[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2장부터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이 바뀝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셨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1절) 라는 문구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어린 양이 희생되는 기간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도 유월절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구체적으로 시작하신 장소는 베다니였습니다. 그 곳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마지막 표적이 있었던 곳이며, 그 증거로 다시 살아난 나사로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를 들리셨을 때,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남매인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방법으로 각자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2절). 마르다는 힘을 다해 섬겼고, 나사로는 그 존재 자체로...]]></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2-1-19</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8937debdcb60bb74c89</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Thu, 29 Jan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1장]]></title><description><![CDATA[요한복음에서 기적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초자연적 능력을 뜻하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요한이 기록한 표적은 모두 일곱 가지입니다. (1)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 (2:1-11),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46-54), (3) 38년된 병자를 고치심 (5:1-9), (4)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심 (6:1-14), (5) 물 위를 걸으심 (6:16-21), (6)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고치심 (9:1-7), (7)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심 (11:1-44). 예수님께서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나타내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 20:31 참고).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1장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장면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1%EC%9E%A5</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84ece85b49c3c4d324f</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Wed, 28 Jan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0:22-42]]></title><description><![CDATA[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유대인들은 ‘하누카’를 절기로 기념합니다. 이 하누카가 오늘 본문에 기록된 ‘수전절’인데, 이방신 숭배로 더럽혀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정화시켜 하나님께 봉헌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주전 168년에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가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고기를 제물로 바치도록 강요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저항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를 ‘마카비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주전 164년에 마카비 저항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하게 합니다.   수전절은 겨울에 있는데, 이스라엘은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이 우기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 계셨던 것이 비를 피하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곳에 있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 (메시야) 인지 밝히 말씀해달라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25절)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0-22-42</link><guid isPermaLink="false">6a3297c373364b8eee6c44aa</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Tue, 27 Jan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10:1-21]]></title><description><![CDATA[요한복음은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 복음) 과 다르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줍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나는 ~이다” 의 형태를 띤 구절을 7번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I AM statements” 라고 하고, 헬라 원어로는 “에고 에이미” 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일곱 가지 “에고 에이미” 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3) 나는 양의 문이다 (10:7). (4) 나는 선한 목자다 (10:11).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7) 나는 참 포도나무다 (15:1). 이러한 예수님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출애굽기 3:14) 라고...]]></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10-1-21</link><guid isPermaLink="false">697795a16b7a080e43d688a4</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Mon, 26 Jan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9장]]></title><description><![CDATA[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2절). 당시 유대 사회에서 장애를 죄와 연결해서 생각한 것은 꽤 일반적인 통념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인해서 저주를 받아서 질병 혹은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기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언제 죄를 지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죄라고 한다면 태중에서도 죄를 지을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고, 부모의 죄라고...]]></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9%EC%9E%A5</link><guid isPermaLink="false">69779540d87a588901628ed6</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Sat, 24 Jan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item><title><![CDATA[요한복음 8:31-59]]></title><description><![CDATA[오늘 본문의 32절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는 무엇이며 또 자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리와 자유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했을 때, 진리와 자유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를 말씀하셨을 때, 그곳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그들이 남의 종이 된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33절). 하지만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나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했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로 사역을 하셨던 당시에도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판하며,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유는 죄에 대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description><link>https://www.onechurchnj.org/post/%EC%9A%94%ED%95%9C%EB%B3%B5%EC%9D%8C-8-31-59</link><guid isPermaLink="false">697794f3d87a588901628e38</guid><category><![CDATA[Daily Devotions]]></category><pubDate>Fri, 23 Jan 2026 05:00:00 GMT</pubDate><dc:creator>김정훈 목사</dc:creator></item></channel></rss>